HOMENOTICE즐겨찾기추가

     HOME > 커뮤니티 >자료실

    자료실

    교회소식
      제목 : 박진하 목사 번역서 "대심판의 날"(4) -존 L. 슐러 저 | 2012년 07월 04일 18시 08분 25초
    조회수 : 854  

    달아보고 발견함

     

    예전에 다니엘 웹스터가 지금까지 그의 마음에 떠오른 가장 위대한 질문이었던 것을 어느 대중 만찬에서 질문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나의 개인적인 책임이라는 그의 열렬하고 사려 깊은 대답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개인적인 책임이라는 이 생각을 항상 마음 속에 간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같은 잘못으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가리킴으로써 그들의 비행들을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흉악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어떤 행위도 전혀 우리 자신들의 비행을 변명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담치 않을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지만, 그러나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에스겔 18 20). 이와 같이 모든 영혼은 자기가 한 모든 행동들에 대해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책임을 집니다.

    모든 영혼은 심판 때에 자기 스스로 대답해야만 합니다. 쟁점이 누군가 다른 사람이 행한 것으로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무었을 했습니까?라는 단호한 질문이 있을 것입니다.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기록 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이 할지도 모르는 것과 상관없이 우리가 옳다고 알고 있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합니까?

    비록 그들이 우리들 자신의 가정들 중 가장 사랑받는 자들일지라도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의 성결한 품성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노아, 다니엘, 그리고 욥, 이 세 사람들이 땅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은 자녀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에스겔 14 20).

    아무리 이생에서 교제가 가깝다고 할지라도, 심판에 의해 참으로 주님의 것인 자들이 나타날 것이며, 인류 전체를 2 개의 부류로 영원히 나눌 것인데, 그 한 부류는 주님께서 오실 때에 하늘로 데려가게 될 것이고, 다른 부류는 마침내 불못에서 되기 위해 지구상에 남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마태복음 24:40, 41).

    두 남자가 밭이나, 가게나, 사무실에서 나란히 일할 수 있습니다. 또는 두 여자가 같은 옷을 입고 직장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둘 다 같은 교회에 다닐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하늘의 빛에 따라 살고 있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오실 나라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은 주님께로부터 보내진 어떤 진리를 거절함으로써 잃어버린 바 될 것입니다.

    심판은 분명히 있고, 우리들은 그것을 피할 수 없으므로, 해야 할 단 한가지 현명한 일은 그것을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잠언 22 3).

    심판을 영리하게 준비하려면, 우리들은 심판의 표준을 꼭 알아야 합니다. 이 표준은 사람에게 다음의 세 가지 방법으로 분명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십계명에 구체적으로 주어져 있고, 성경인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확대되어 있으며, 그리스도의 삶 속에 주어져 있습니다. 시인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그분의 삶 속에 율법이 나타나고, 살아있는 사람들 속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유서입니다. 그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방법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안내서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편 119 105).

    성경은 우리들이 따라가야 할 길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우리의 행실을 제어해야 하는 원칙들을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성경을 우리들의 안내자가 되도록 주셨으며, 심판 날에 우리의 행동들은 설명서와 비교될 것이며, 우리의 사건들은 그에 상응하게 결정될 것입니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한복음 12 48).

     

                       하나님의 율법

     

    십계명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삶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그 교훈들을 새김으로써 그분의 율법과 조화를 이루게 될 때만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습니다. (시편 40 8.)

    십계명은 오늘날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완전한 행동 규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삶의 규칙으로써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 법은 죄를 정의하며 (로마서 3 20); 그것은 또한 의를 드러냅니다 (시편 119 172). 그것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말해주며,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의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12 13.)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로마서 2 12; 야고보서 2 12).

    십계명은 표준인데 그 표준에 의해 사람들의 품성과 삶이 심판에서 시험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십계명에 순종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심판을 위해 준비되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에 순종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십계명은 하늘의 정의와 의의 저울인데, 그 저울로 대법관이 각 사람의 삶을 달아볼 것입니다. 누구나 저울의 사용에 익숙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쪽 접시 위에 있는 4 킬로그램의 밀가루나 설탕이 다른 쪽 접시 위에 있는 4.5 킬로그램의 추와 균형을 이루지 못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친구여, 우리들의 삼에서 9 점의 순종은 하나님의 율법 안에서 10 가지의 요구사항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야고보서 2 10)아고 말씀하십니다. 심판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해, 우리들은 반드시 지금 율법 안에 있는 모든 계율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날 부르심에 반응하지 않고 그분의 모든 계명들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까?

    우리들은 교회에 속해 있을지도 모르고, , 우리들의 신앙고백은 하늘 만큼 높을지 몰라도, 그러나 이것이 대심판 날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영원을 위한 운명들을 결정하는 질문은 당신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아버지의 뜻을 행했는가, 즉 당신은 그분의 말씀을 지켰습니까? 입니다.

    대법관이 그분의 상급들을 수여하실 때 놀라운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전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 21-23).

    만일 우리들이 그분의 계명들의 방법 대신에 우리 자신들의 방법을 선택했다면, 만일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 대신에 사람들의 가르침들을 따랐다면, 그 판결은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가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은혜를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행하면, 수많은 하늘나라 입장권이 우리들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계시록 22 14).

     

                   우리의 모본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본보기입니다. 우리들은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 21.) 그분은 기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들에게 살아가는 법을 보여주기 위해 여기에 오셔서 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그분께서는 심지어 우리들 안에 사시고 성취하십니다. (갈라디아서 2 20.) 그분은 우리의 모본입니다. 심판에서 우리들의 삶은 그것들이 하나님의 표준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보기 위해 그분의 삶과 비교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리라. 그가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하시리라 (로마서 2 16; 사도행전 17 31).

    우리들은 말씀에 의해, 율법에 의해,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해 심판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모두 한가지로 일치합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 1, 14.) 그분의 생애는 기록된 말씀의 원칙들을 완전하게 예증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또한 살아있는 형태로 하나님의 율법입니다. 그분께서 한때 돌에 기록하신 것을 그분께서 사람들 가운데서 사실 때 그분의 생애 가운데 행동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십계명에 대한 하늘의 설명이며 해석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행동이 승인과 상급으로 인식될 것인지 아니면 정죄와 징벌로 거절될 것인지 결정할 하나님의 표준입니다.

     

                  심판을 준비하는 방법

     

    만일 우리들이 심판받을 준비가 되어 있으려면, 우리들은 반드시 모든 죄에 대해 회개해야 합니다. 죄는 언제나 심판에서 어떤 사람도 정죄하는 유일한 것입니다. 삶 속에서 짓는 죄는 우리들이 우리의 하나님을 만나는데 준비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유일한 것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도처에 사는 사람들이 회개하여 그들이 심판을 위해 준비하도록 죄를 제거하라고 호소하십니다. (사도행전 17 30, 31.)

    어떤 사람이 죄를 제거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을 그의 개인적인 구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마태복음 1 21).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 7).

    이와 같이 우리들은 요한복음 5 24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영혼은 정죄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있다고 보장받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8 1).

    심판 때에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그분의 의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 안에 숨겨지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 3).그의 생애만이 우리들이 심판받을 율법의 요구들을 만족시킬 것입니다. 우리들이 진실로 우리의 죄들에 대해 회개하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의 대속하는 희생으로 주장할 때, 우리들은 그분의 의의 동반자들이 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율법의 의우리 안에서 성취되고 우리들의 삶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의 요구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발견될 것이며 (로마서 8 3, 4), 우리들은 심판 때에 그분의 나라에 있는 집에 들어갈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그분 안에 거하기

     

    만일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있으면 완전한 자신감을 가지고 심판을 직면하는 것은 우리들의 특권입니다.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요한일서 4 16, 17).

    이와 같이 우리들은 사도와 같이 우리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빌립보서 3 9)그분 안에서 발견되도록 결심해야 합니다.

    지구상의 법정들에서는 사람들은 소추의 면책을 살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판사나 배심원들에게 뇌물을 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약삭빠른 범죄 담당 변호사들은 절차상의 문제들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우리들을 위한 한가지 유일한 소망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 (요한일서 2 1).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지구상에 살았던 어떤 사람도 우리들의 죄를 용서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의 심판대에 나타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들에게 그분 자신의 의를 입혀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 우리의 그리스도인 경험 속에서 날마다 그것을 나눠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을 도우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분으로 알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14 6.) 그분은 자기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분은 항상 살아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7 25.)

    그분은 한 사건도 잃어본 적이 없는 변호사이십니다. 그러나 그분께 그들의 사건들을 맡기는 자들에게만 그분의 기이하신 중보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항복하는 삶이라는 딱 한가지 조건으로 우리들의 사건들을 맡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변호사입니까?

     

    오 나의 심판 받으러 가는 친구여, 물어볼 게 있어요. 예수님이 당신의 변호사입니까? 당신은 당신의 사건을 그분의 손에 완전히 맡겼습니까? 당신의 영원한 운명은 당신이 이것을 했는지 여부에 달려있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사건을 탄원하실까요? 오 그분을 받아들이십시오, 왜냐하면 다른 소망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수 년 전에 러시아에 황제가 정부를 위해 많은 양의 돈을 다루도록 위탁한 어떤 관리가 살았습니다. 그는 이 자금에서 얼마를 유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회계 감사관이 이 자금의 부족을 발견할 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의문이 마침내 그의 마음속에 생겼습니다.

    그는 앉아서 그가 유용한 돈의 양을 진술서로 작성했습니다. 그것은 길고 당황케 하는 목록이었습니다. 그는 이 부족분을 보충할 뾰족한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걱정을 하면서 그는 그 숫자들 아래에 누가 이 모든 빚을 지불할 수 있는가?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그의 책상에서 잠들었습니다.

    우연히 황제가 그 날 시찰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관리가 책상에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그는 그에게로 갔는데, 거기서 맨 아래에 누가 이 모든 빚을 갚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기록된 그 종이를 보았습니다. 금을 박아놓은 그의 만년필을 꺼내어, 그는 그 질문 뒤에 자기 자신의 이름 알렉산더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나서 황제는 계속 지나갔습니다. 당신은 그가 깨어나 그 수치스러운 고백을 다시 보고 그리고 황제가 그의 빚을 떠맡은 것을 보았을 때 그 관리의 기쁨을 상상할 수 없습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 각자를 위해 기꺼이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책들에 당신의 이름과 나의 이름을 대적하는 빚인 긴 목록의 죄가 있습니다. 누가 이 모든 빚을 갚을 수 있습니까? 우리들은 우리의 기록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어느 날 예수께서 그분 앞에 서있던 어떤 사람들의 죄들을 모래에 기록했을 때, 그들은 모두 그분의 시야에서 도망쳤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기록을 보는 것이 수치스러웠습니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행한 모든 잘못들을 우리들 앞에 모두 기록하여 걸어둔다면, 우리들은 그것을 다 읽을 때까지 머물러 있지 못할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찍을 수 있는 사진사가 그 나라에 온다면, 그는 고객을 만나기도 전에 굶어죽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모든 죄의 기록은 위에 있는 책들에 기록되어 있으며, 우리들은 그 기록에서 단 한 자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록은 우리들을 정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들이 회개하여 예수님께로 향하면, 그분께서는 그 무시무시한 죄의 목록 맨 아래에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이사야 43 25)고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오.

     

    예수님의 피로 정결하게 됨

         

    당신은 축음기 기록을 가져와서, 알코올에 적신 천을 가지고 그것 위에 적시면, 놀랍게도 그 음향이 영원히 사라집니다. 당신은 어떤 큰 재난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는 필름을 가져와서 질산으로 그것을 씻으면 그 영상이 서서히 사라지고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귀한 피가 우리들의 죗된 언행을 하늘의 기록에서 도말하시고 우리들의 악한 생각과 행동을 하늘의 사진 감광판에서 제거하실 수 있습니다.

    , 당신의 죄들과 나의 죄들이 심판에 미리 보내지고 반면에 갈바리의 주님의 피가 그 책들에서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도말하시는 것이 그 죄들이 그 뒤를 좇 (디모데전서 5 24)아 우리들을 단 번에 만나 그때 그 죄들이 온 우주가 바라보고 있을 때에 공개되는 것 보다 얼마나 더 좋은가! 우리들은 우리들의 죄가 기록되지 않도록 할 수가 없지만, 만일 우리들이 원하기만 하면, 심판 때에 그것들이 없어지게 하는 것은 우리들의 특권입니다. 주요 질문은 이 악한 것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받았다는 것을 그 기록이 보여줄 것인가 그리고 죗된 생애를 그리스도께 굴복하고 그분의 은혜를 그 죄를 가리기 위해 받아들였는가 입니다.

    지금 하나님께 당신의 모든 죄들을 내어놓으십시오. 로우스의 역이 다음과 같이 보여주듯이 그분의 용기를 주는 음성을 들으십시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이사야 1 18).

    영혼아, 지금 그 기록을 직시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심판 때에 그것을 반드시 대면해야 합니다. 심판자 앞에 진실한 고백으로 당신의 모든 죄들을 털어놓으십시오. 아무것도 눈감아 주지말고, 아무것도 변명하지 말고, 아무것도 가볍게 하거나 가리지 마십시오. 죄가 그 주한 모습 그대로 드러나게 하십시오. 그러나 그것이 심판자와 함께 거기에 있게 하십시오! 그분께서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뒤에 숨는 것을 보게, 즉 당신이 영원히 죄와 동반자관계를 끊었다는 것을 알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당신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의로 옷 입고 심판 때에 견딜 것입니다. 심판의 법은 당신의 영혼에 사랑과 기쁨의 법이 될 것이며, 당신은 그 심판자 안에서 아버지이며 친구이신 분은 볼 것입니다.

     

                      족함 아니면 부족함

     

    독일의 어느 옛 모습의 마을에 더 이상 예배 장소로 사용되고 있지 않는 성당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박물관으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 벽에 심판을 나타내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의 위엄의 보좌에 그리스도께서 앉아있습니다. 그분 뒤에 심판사역에서 그분을 돕는 목적인 것으로 보이는 일을 위해 사도들과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분 앞에 큰 무리의 사람들이 있는데, 당신이 볼 수 있는 한, 머리들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천사가 그의 양손에 저울을 들고 서있습니다. 이 저울 그림 위에 한 손이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그대가 저울에 달리니 _______이 보이니라. 글을 쓰는 손이 보이니라는 단어를 쓰고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 손이 마지막 단어를 쓰기 전에 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그림을 보기 위해 그 오래된 성당을 방문한 어느 미국인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그 교회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여러 번 남자들과 여자들이 단지 호기심에서 내가 갔듯이 거기에 들어갔고 그 복도에 엎드려 자비를 달라고 간구했고 구원을 위해 기도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나는 그 그림이 끼친 것 만큼 나에게 영향을 준 것이 내 인생에서 결코 없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처음에는 그 그림에 대해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게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팔짱을 끼고 그 것을 쳐다보고, 나는 심판에 대한 성경을 기억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서서 그것을 쳐다보았을 때, 등줄기가 오싹해졌습니다.

    우리들은 오늘 심판의 때에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건과 나의 사건이 곧 대심판자 앞에 나올 것입니다. 당신의 생애는 그분의 율법의 표준에 의해 재어질 것입니다. 판결이 다음과 같이 선고될 것입니다: 그대가 저울에 달리니 _______이 보이니라. 빈 칸은 족함 이나 부족함 이 두 단어들 중 어느 하나로 반드시 채워져야 합니다.

    자기의 이름 뒤에 첫 번째 단어가 기록된 자들에게는 그 결과 영생에 이르게 됩니다.

    두 번째 단어는 결과적으로 영원한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친구여, 천사는 당신의 이름 뒤에 어느 단어를 쓸까요? 만일 그 빈칸이 바로 이 시간에 채워져야 한다면, 그게 족함일까요? 아니면 부족함일까요?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서 12 13, 14).

     

     

     

     

                                      

     

     

    사진설명: 하나님의 축복 아래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가족은 심판과 그의 판결을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누가 속죄염소인가?

     

    표상적인 봉사에서 그 해의 죄들을 마지막으로 처리할 때에, 대제사장은 그 죄들을 속죄염소 위에 전가했습니다. 속죄염소는 누구를 대표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 속죄염소가 십자가 상에서 그리스도의 사업의 대리적인 면을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실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그 속죄염소는 사람들의 죄 때문에 살해되지도 않고 죽임을 당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산채로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으로 멀리 보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들의 용서를 위해 은혜의 보좌 위에 주를 위한 염소의 피를 뿌린 후에 대제사장이 성소에서 밖으로 나왔을 때, 이 죄들은 어떤 화해나 대속이나 대리의 의미로 그 속죄염소에게 전혀 전가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이스라엘 회중을 위한 대속은 대제사장이 성소에서 밖으로 나올 때 이미 이루어졌다고 선포합니다. (레위기 16 17.)

    그 속죄염소는 대속을 하지 않습니다. 피흘림이 없으면 전혀 죄 사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9 22.) 대속을 한 것은 주를 위한 염소의 피였습니다. (레위기 16 15-19.) 주를 위한 염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대표했습니다.

    아사셀은 레위기 16 18절의 AV (Authorized Version)역에서 속죄염소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를 음역한 것입니다. 이 아사셀은 누구입니까?

    헹스텐버그는 아주 확신을 하며 아사셀은 바로 사단에 대한 또 하나의 다른 이름일 수 밖에 없다고 확언합니다. __찰스 비처, Redeemer and Redeemed, 67, 68

    오리겐(Origen)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70인역에서 Apopompaios로 그리고 히브리어에서 아사셀이라고 불리는 자는 다름아닌 마귀입니다

    레위기 16 8절에 대한 주석을 할 때에 Comprehensive Commentary에는 다음의 중요한 언급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속죄염소: 히브리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오래된 의견들을 따라 스펜서(Spencer)는 아사셀이 마귀의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리고 로젠뮬러(Rosenmuller)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고대 시리아 말에는 반역한 천사 (강한 천사) 아사일(Azzail)이 있습니다.

    표상적으로, 이스라엘의 죄들이 용서받아 주를 위한 염소의 피로 말미암아 성소에서 제거되었을 때, 대제사장은 이 죄들을 그 자신의 몸에 지고서 밖으로 나와 그것들을 속죄염소에게 전가했습니다. 그래서 실체에서, 우리들의 대제사장 예수께서 그분의 백성들의 죄들을 도말을 통하여 하늘 성소의 정결을 끝냈을 때,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들을 사단에게 전가할 것이고, 그러면 그는 그가 그들에게 짓도록 한 모든 악에 대해 유죄 선고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잔해는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그 포학은 자기 정수리에 내리리로다 (시편 7 16).

    실체상의 속죄염소로서 사단은 전혀 어떤 대속하는 의미로 이 죄들을 지지 않습니다. 사단의 머리 위에 전가된 것은 이 범죄들에 대해 그 자신이 문책 받는 것이며 그 자신의 죄들에 대한 유죄입니다.

                              광야로

     

    속죄염소가 광야 곧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땅으로 적합한 사람의 손에 이끌려 멀리 보내졌듯이 (레위기 16 21, 22),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하늘에서 온 천사가 사단을 결박하여 그를 무저갱, 지옥, 황량하고 인적이 없게 된 지구로 던져집니다. 거기서 그는 천년기로 알려진 천 년 동안 감금되어 있게 될 것입니다. (계시록 20 1-3.) 이 기간이 끝났을 때, 사단은 모든 악인들과 함께, 불 못에서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계시록 20 7-9; 에스겔 28 18, 19.) 그 다음에 죄 없는 새 땅이 나타나, 그곳에서 의인들이 영원히 살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 10-13.) 이와 같이 죄가 처리되어 존재하지 않게 말소될 것입니다. (나훔 1 9.)

    이것은 성경상의 대속 교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오는 모든 자들의 죄들에 대해 완전하게 만족시키는 반면에, 사단은 전적으로 그 자신의 것인 죄들을 질뿐만 아니라 그가 그들에게 짓도록 유혹해온 자들 가운데 우두머리로서 잃어버린 자들과 함께 잡혀 벌을 받게 됩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심으로 그분의 희생을 스스로 이용하는 모든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가 만족됩니다. 사단과 그의 악인들과 악한 천사들의 무리가 모든 다른 죄들을 지고 불 못에 들어갑니다.

     

    죄의 실재

     

    성경은 죄를 구체적인 것으로 다룹니다. 모든 과실과 불순종은 반드시 정당한 상급의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2 3.) 마땅한 처벌 수단이 모든 죄에 대해 정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스스로 이용하려는 자들을 위해 한 가지 도피 방법이 예비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 2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 16).

    독자여, 당신은 어느 과정을 추구하시겠습니까? 당신은 고백과 회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당신의 죄를 지시는 분으로 삼으시겠습니까? 아니면 <

      박진하 목사 번역서 "대심판의 날"(3) -존 L. 슐러 저

    TOTAL : 42 , PAGE : 1 / 5
    번호 제목 날짜 조회
    박진하 목사 번역서 "대심판의 날"(4) -존 L. 슐러 저 07-04 854
    41 박진하 목사 번역서 "대심판의 날"(3) -존 L. 슐러 저 07-04 1058
    40 다니엘서 11장의 [남방왕]에 대하여 (박진하 목사) 07-04 884
    39 박진하 목사 번역서 "대심판의 날"(2) -존 L. 슐러 저 07-04 788
    38 박진하 목사 번역서 "대심판의 날"(1) -존 L. 슐러 저 07-04 1685
    37 박진하 목사 저서 "때와 시기"(3) 07-04 1543
    36 박진하 목사 저서 "때와 시기"(2) 07-04 1012
    35 박진하 목사 저서 "때와 시기"(1) 07-04 1461
    34 특별부활에 대해(3)-24장로의 신원과 특별한 하늘 입성 리허설 02-08 1841
    33 특별부활에 대해(2)-그들은 누구인데 특혜를 누리는가? 02-08 1227
    이전| 1 | 2 | 3 | 4 | 5 | 다음
    Copyright(C) 2007 4THANGEL All rights reserved
    주소 : 경기 안성시 미양면 안골길 41-7(갈전리 2번지)  안성브니엘교회   
    E-Mail: 3angelman@hanmail.net
    Tel. 031-674-9995  Fax. 031-673-0999